윥
야외견사에 있다가 평생가족을 만난 행복이 본문

포인핸드를 오래 보다 보니, 분명 곧 입양될 거 같다는 느낌이 오는 아이들이 있다. 슬프지만 그 아이들은 대개 품종견이고, 나이가 어리며, 체구가 작다. 이 아이도 그런 아이였다. 근데 입양 공고 기한이 다 되도록 입양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 경주 보호소는 칼 안락사에 보호소 환경이 열악하다고 소문난 곳. 나는 또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입양 홍보를 꽤 하다 보니, 문의 온 사람 중 이 사람은 분명 입양할 것이라는 느낌이 오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이 사람은 절대 입양 안 할 거라는 느낌도 제대로 온다. 이 아이에 대해 문의 준 사람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입양할게요" 하고서는 다음 날, '엄마가 안된다네요....' '아들이 반대하네요....' 분명 미성년자 아닌 것도 확인했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이는 그 추운 겨울에 계속 야외에 있고... 내일 기온이 낮을 거라는 예보를 들으면 또 잠을 못 이루고.... 그러다가 또 기적적으로 입양자님이 나타나셨다. 내 글을 보시고 계속 눈에 밟혀서 입양 문의를 주셨다고. 아이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큰 병이 있더라도 잘 감당해 보겠다는 말씀에 또 눈물.
세상엔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다. 산 아이들을 버리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있는 만큼, 좋은 분들이 계신 거 같다. 입양하겠다고, 임보하겠다가 하다가 취소한 인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이런 분들을 만나면 또 그 분노가 사그라들고 진정되고 그런다. 이런 힘으로 내가 4개월 내내 여기에 매달리며 아이들을 입양 보낼 수 있었던 것이겠지.

행복이는 내가 입양 보냈던 아이 중에 유일하게 이동봉사를 거치지 않은 아이다. 입양자님이 경기도에서 ktx를 타고 경주까지 오셔서 아이를 데리고 가셨다. 사실 이게 이상적인 일이고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데리고 평생 살 아이는 직접 보고 데려가야 하는 게 맞다. 다만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으니까. 나도 입양이 간절한 상황에서 서울에서 경주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면 조금 주저하게 될 거 같다.
행복이는 내가 보낸 아이들이 다 그랬듯이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메시지를 주신 입양자님은, 행복이가 너무 좋아하고 벌써 적응을 끝낸 것 같다고 하셨다. 체념한 눈으로 야외견사 밖을 하염없이 보던 아이가 사실은 사람을 참 좋아하던 아이였다니. 이런 말들이 또 하나의 슬픔이 되어 다가온다.

다행히 행복이는 심장사상충 음성이었고 건강도 괜찮았다. 2월 27일에 평생 가족을 만난 행복이. 3월 8일에 다시 연락드렸더니 위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그냥 있다가도 이름 부르면 갑자기 아련해지면서 표정이 바뀐다는 행복이. 아직 웃는 모습은 많이 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 많이 볼 거라고 생각한다는 입양자님. 행복이가 분리불안이 살짝 있어 펫 시터 이용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는 중이라는데, 나는 행복이가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름처럼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가끔 보내주시는 행복이의 사진을 확인하면서 그 확신을 확인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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