윥
내가 처음 입양 보낸 미우, 아니 이제는 사랑이 본문

사람만 보면 왕왕 짖지만 내심 만져주면 가만히 있음. 사람 손길이 그리운 듯
내가 미우를 책임지고 입양 보내야겠다 마음먹었던 건 유기동물 공고에 나와있는 이 특징란 문구 때문이었다. 저 크고 슬픈 눈망울에 사람 손을 탔지만 또 사람을 경계하게 할 만한 그 사연이 무엇일까. 본가에 있는 강아지가 생각이 나면서 오랜만에 울었다. 처음엔 나를 경계했지만 이내 내게 마음을 열었던 아이. 나만 졸졸 따라다니고 산책하며 세상 행복하게 웃던 그 아이가 미우처럼 버려지고 좁은 보호소 철장 안에서 있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미우 이 아이도 처음엔 이렇게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받고 세상 행복하게 웃었겠지. 그래서일까. 미우를 책임지고 입양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 후로 일주일 넘게 걸리는 시간을 미우 입양 보내는 데에 전념을 다했다.
임보(임시보호)할 수 있다는 - 미우와 상관없는 - 게시물에 무작정 댓글을 달거나 연락을 취해서 강아지 임보 부탁드린다고 절절매기도 했고, 임보 문의하시는 분들께 길거리에 무작정 서서 휴대폰에 대고 90도 감사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일주일 간 겪어보니, 생명 하나 구하는 건 도통 쉽지가 않은 일이었다. 동시에 자신감도 붙었다. 왠지 미우는 입양 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입양이나 임보 문의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동에 주저하셨기에, 이동은 제가 책임지고 맡아서 해보겠다 큰소리쳤다(필자는 운전면허는 있지만 주차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한 분이 연락을 주셨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못하지만, 강아지 키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었고 보호소와 나, 그리고 입양자님 간의 여러 연락 끝에 미우가 그 집으로 입양 가기로 결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동도 도와주시겠다는 분이 계셔서(서두에 언급했던 무작정 내가 임보 부탁드렸던 그분이 도와주셨다) 그 뒤로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보호소 시설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고, 그걸 전해 듣고는 미우가 큰 병이 있지는 않은지가 가장 걱정되었다. 시 차원에서 지원금 받고 운영되는 보호소 시설인데, 어떻게 그렇게 열악할 수 있는지. 미우가 그곳에서 한 달 간을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고 미안했다. 다행히 이동 봉사자님이 중간중간에 켄넬에서 꺼내 산책도 시켜주고 물도 먹여주면서 천천히 올라가셔서, 미우는 멀미도 하지 않은 채로 잘 도착할 수 있었다.

막 도착한 미우가 콧물을 흘린다고 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병원 검진 결과 다행히 큰 병은 없었다. 뒷다리 슬개골 탈골 가능성이 약간 있는 거 빼고. 아, 폐에 염증이 있다고 해서 처방약과 호흡기 치료액을 받아 오셨다고 했다. 미우네 집에 적외선 조사기도 있고 호흡기 치료기도 있고 미우 전용 가습기도 있어서 호흡기 문제는 계속 케어 받겠다 싶어 또 안심이 되었다. 한번 더 마음이 아팠던 건 병원 진료실에서 있는 40분 동안 벌벌 떨며 낯설어했다는 점과 체중이 2.5킬로도 안 되었다는 점.
미우가 평생 살 집에 입양 간 지 이틀 되던 날. 미우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사랑이. 미우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고 사람 냄새나는 이름.
미우, 아니 사랑이는 그렇게 가족을 만났다.


포인핸드 특이사항에 짧게 있던 '경계'. 이 두 글자 때문에 사랑이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보호소에 갇혀 있게 된 게 아닐까.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 특이사항을 어떻게 올리느냐에 따라 강아지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보호소에 한 번이라도 더 문의해보고, 한 번이라도 더 사진을 찍어서 올려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사랑이 어머님은 아주 좋은 분이셔서, 내가 따로 근황을 묻지 않아도 자주 사진을 보내주신다. 얼마 전에는 감사한 마음에 강아지 수제 간식을 보내드렸는데 꼼꼼히 알레르기 체크도 해주시고 어떤 간식을 잘 먹는지도 상세히 적어서 보내주셨다. 정말 좋은 분을 만난 것 같다. 나도, 또 사랑이도....
사랑이는 일주일 되던 날 벌써 폐 쪽의 염증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 쪽이 이제 아주 선명하게 잘 나온다고. 몸무게도 300그램 늘고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보호소에서 수분 섭취를 제대로 못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 변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첫날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장에 변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이것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수분 섭취에 특히 신경 쓰고 있다는 사랑이 어머님 말씀에 또 눈물. 사랑아, 너 정말 좋은 집으로 입양 갔구나. 사랑만 받고 사는구나. 이때부터는 나도 정말 마음 깊이 안심이 되었던 거 같다.

사랑이가 집에 적응을 좀 하니, 갑자기 성격이 깡패가 되었다고(ㅋㅋㅋ) 한다. 산책할 때 보는 개들한테 다 짖어대어 동네에서 깡패로 유명하다고.... 나는 이럴 때 괜히 아이 맡긴 부모처럼 작아지게 된다. 사랑아! 사랑만 주시는데 말썽은 조금 덜 부리자.. 더불어 사랑이 방귀 냄새가 심해져서 유산균도 먹이고 있다는 말에 웃다가 기절.

입양 간 지 석 달째. 이제 사랑이는 마음을 연 것 같다. 위기상황(!!)이 있었는데 사랑이 어머님이 달래고 어루만져주니 그 뒤부터 사랑이 어머님 껌딱지가 되어 졸졸 쫓아다닌다고. 여전히 동네 깡패지만, 이제 입질도 줄고 애교도 피우고 다리 쩍 벌리며 잠도 편히 자고.... 공고 사진에서 슬픈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사랑이와는 영 딴판이 되었다. 사랑이의 세상이 한층 더 넓어진 거다. 그리고 사랑이를 계기로, 나의 세상도 한층 더 넓어지게 되었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니 한 아이의 삶이 180도 바뀌는 걸 겪었다. 나는 그 뒤로 포인핸드를 하루에도 몇백 번 들어가 보며 입양 홍보에 목매게 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9마리의 생명을 구해냈다. 아직 입양처를 찾지 못한 아이들 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또 이렇게 사랑이 어머님 같은 분들께 연락을 받고 근황을 확인하고 나면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낀다.
여러 아이들을 입양 혹은 임보 보내고 나니, 그 근황을 어느 곳에 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쓰자니 조금 부담이 되었고(워낙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기에), 포인핸드에 쓰자니 또 너무 많아 입양 홍보 중인 아이들이 묻힐 거 같았다. 그래서 이곳에 소소하게나마 입양 혹은 임보 근황을 기록하기로 했다. 이곳은 내 생각에 아주 유명하지는 않아(???) 내가 링크를 드리는 분들만 보지 않을까 싶다. 내 예상과는 달리 우연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생긴다면, 그분들께 유기동물 입양에 대해 넌지시 제안드리거나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내심 기대도 해본다. 으음. 그런 글이 되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더 고심하며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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