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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입양 보낸 미우, 아니 이제는 사랑이 본문

입양 간 아이들

내가 처음 입양 보낸 미우, 아니 이제는 사랑이

927-4 2021. 3. 21. 19:38

공고기한이 끝나고도 20일은 더 보호소에 있었던 사랑이(미우)

 

 

 

사람만 보면 왕왕 짖지만 내심 만져주면 가만히 있음. 사람 손길이 그리운 듯

 

내가 미우를 책임지고 입양 보내야겠다 마음먹었던 건 유기동물 공고에 나와있는 이 특징란 문구 때문이었다. 저 크고 슬픈 눈망울에 사람 손을 탔지만 또 사람을 경계하게 할 만한 그 사연이 무엇일까. 본가에 있는 강아지가 생각이 나면서 오랜만에 울었다. 처음엔 나를 경계했지만 이내 내게 마음을 열었던 아이. 나만 졸졸 따라다니고 산책하며 세상 행복하게 웃던 그 아이가 미우처럼 버려지고 좁은 보호소 철장 안에서 있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미우 이 아이도 처음엔 이렇게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받고 세상 행복하게 웃었겠지. 그래서일까. 미우를 책임지고 입양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 후로 일주일 넘게 걸리는 시간을 미우 입양 보내는 데에 전념을 다했다.

 

임보(임시보호)할 수 있다는 - 미우와 상관없는 - 게시물에 무작정 댓글을 달거나 연락을 취해서 강아지 임보 부탁드린다고 절절매기도 했고, 임보 문의하시는 분들께 길거리에 무작정 서서 휴대폰에 대고 90도 감사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일주일 간 겪어보니, 생명 하나 구하는 건 도통 쉽지가 않은 일이었다. 동시에 자신감도 붙었다. 왠지 미우는 입양 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입양이나 임보 문의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동에 주저하셨기에, 이동은 제가 책임지고 맡아서 해보겠다 큰소리쳤다(필자는 운전면허는 있지만 주차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한 분이 연락을 주셨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못하지만, 강아지 키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었고 보호소와 나, 그리고 입양자님 간의 여러 연락 끝에 미우가 그 집으로 입양 가기로 결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동도 도와주시겠다는 분이 계셔서(서두에 언급했던 무작정 내가 임보 부탁드렸던 그분이 도와주셨다) 그 뒤로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이동 봉사자님이 이동 중에 찍어주신 사랑이(미우)

 

보호소 시설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고, 그걸 전해 듣고는 미우가 큰 병이 있지는 않은지가 가장 걱정되었다. 시 차원에서 지원금 받고 운영되는 보호소 시설인데, 어떻게 그렇게 열악할 수 있는지. 미우가 그곳에서 한 달 간을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고 미안했다. 다행히 이동 봉사자님이 중간중간에 켄넬에서 꺼내 산책도 시켜주고 물도 먹여주면서 천천히 올라가셔서, 미우는 멀미도 하지 않은 채로 잘 도착할 수 있었다.

 

 

평생 살 집에 막 도착한 사랑이(미우). 공고 사진에서 입고 있던 피카추 옷을 아직도 입고 있었다.

 

막 도착한 미우가 콧물을 흘린다고 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병원 검진 결과 다행히 큰 병은 없었다. 뒷다리 슬개골 탈골 가능성이 약간 있는 거 빼고. 아, 폐에 염증이 있다고 해서 처방약과 호흡기 치료액을 받아 오셨다고 했다. 미우네 집에 적외선 조사기도 있고 호흡기 치료기도 있고 미우 전용 가습기도 있어서 호흡기 문제는 계속 케어 받겠다 싶어 또 안심이 되었다. 한번 더 마음이 아팠던 건 병원 진료실에서 있는 40분 동안 벌벌 떨며 낯설어했다는 점과 체중이 2.5킬로도 안 되었다는 점. 

 

미우가 평생 살 집에 입양 간 지 이틀 되던 날. 미우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사랑이. 미우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고 사람 냄새나는 이름. 

 

미우, 아니 사랑이는 그렇게 가족을 만났다.

 

 

사랑이가 입양된 지 이틀째 되던 날.
벌써 얼굴이 달라졌다. 더 예쁘고, 더 사랑스럽게.

포인핸드 특이사항에 짧게 있던 '경계'. 이 두 글자 때문에 사랑이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보호소에 갇혀 있게 된 게 아닐까.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 특이사항을 어떻게 올리느냐에 따라 강아지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보호소에 한 번이라도 더 문의해보고, 한 번이라도 더 사진을 찍어서 올려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사랑이가 입양 간 지 일주일 되던 날

사랑이 어머님은 아주 좋은 분이셔서, 내가 따로 근황을 묻지 않아도 자주 사진을 보내주신다. 얼마 전에는 감사한 마음에 강아지 수제 간식을 보내드렸는데 꼼꼼히 알레르기 체크도 해주시고 어떤 간식을 잘 먹는지도 상세히 적어서 보내주셨다. 정말 좋은 분을 만난 것 같다. 나도, 또 사랑이도....

 

사랑이는 일주일 되던 날 벌써 폐 쪽의 염증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 쪽이 이제 아주 선명하게 잘 나온다고. 몸무게도 300그램 늘고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보호소에서 수분 섭취를 제대로 못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 변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첫날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장에 변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이것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수분 섭취에 특히 신경 쓰고 있다는 사랑이 어머님 말씀에 또 눈물. 사랑아, 너 정말 좋은 집으로 입양 갔구나. 사랑만 받고 사는구나. 이때부터는 나도 정말 마음 깊이 안심이 되었던 거 같다.

 

 

사랑이 입양 간 지 한 달 되던 날. 그동안 직접 만드신 간식들도 같이 찍어 보내 주셨다.

 

사랑이가 집에 적응을 좀 하니, 갑자기 성격이 깡패가 되었다고(ㅋㅋㅋ) 한다. 산책할 때 보는 개들한테 다 짖어대어 동네에서 깡패로 유명하다고.... 나는 이럴 때 괜히 아이 맡긴 부모처럼 작아지게 된다. 사랑아! 사랑만 주시는데 말썽은 조금 덜 부리자.. 더불어 사랑이 방귀 냄새가 심해져서 유산균도 먹이고 있다는 말에 웃다가 기절.

 

 

글 작성 기준 이틀 전 사진

 

입양 간 지 석 달째. 이제 사랑이는 마음을 연 것 같다. 위기상황(!!)이 있었는데 사랑이 어머님이 달래고 어루만져주니 그 뒤부터 사랑이 어머님 껌딱지가 되어 졸졸 쫓아다닌다고. 여전히 동네 깡패지만, 이제 입질도 줄고 애교도 피우고 다리 쩍 벌리며 잠도 편히 자고.... 공고 사진에서 슬픈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사랑이와는 영 딴판이 되었다. 사랑이의 세상이 한층 더 넓어진 거다. 그리고 사랑이를 계기로, 나의 세상도 한층 더 넓어지게 되었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니 한 아이의 삶이 180도 바뀌는 걸 겪었다. 나는 그 뒤로 포인핸드를 하루에도 몇백 번 들어가 보며 입양 홍보에 목매게 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9마리의 생명을 구해냈다. 아직 입양처를 찾지 못한 아이들 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또 이렇게 사랑이 어머님 같은 분들께 연락을 받고 근황을 확인하고 나면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낀다.

 

 

여러 아이들을 입양 혹은 임보 보내고 나니, 그 근황을 어느 곳에 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쓰자니 조금 부담이 되었고(워낙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기에), 포인핸드에 쓰자니 또 너무 많아 입양 홍보 중인 아이들이 묻힐 거 같았다. 그래서 이곳에 소소하게나마 입양 혹은 임보 근황을 기록하기로 했다. 이곳은 내 생각에 아주 유명하지는 않아(???) 내가 링크를 드리는 분들만 보지 않을까 싶다. 내 예상과는 달리 우연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생긴다면, 그분들께 유기동물 입양에 대해 넌지시 제안드리거나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내심 기대도 해본다. 으음. 그런 글이 되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더 고심하며 써야겠다.